백선엽 논란 정리
6·25 전쟁 영웅이자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일 오후 11시쯤 별세했습니다. 향년 100세입니다.
백선엽 장군은 1920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1943년부터 일제
강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국군에 입대해 6·25 전쟁에서 맹활약했습니다.
전쟁이 한참일 때 낙동강 다부동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다부동 전투 당시 그가 북한군에 밀려 패퇴 직전인 아군을 향해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습니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이 전투 승리로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평양 진군의 선봉에 나섰습니다.
1951년엔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저지했고, 같은 해 겨울에는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토벌작전에도 나섰습니다.
백선엽 장군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불과 33살의
나이로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국군에서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합참의장 등을 지냈습니다.
1960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엔 주중 한국대사와 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미 8군사령부는백선엽 장군이 한국전쟁 당시 한국 방어에 있어
탁월한 공과 업적을 달성했다며 지난
2013년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백선엽 장군에 대한 수식어에는 6·25 전쟁 영웅뿐
아니라 친일행적 논란도 있습니다.
일제 막바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 탓입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인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와 만주
북서부에 잔존해 있던 대한독립군단을 토벌하기
위한 특수 의도을 띈 독립군 토벌 부대입니다.
이 때문에 백선엽 장군은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친일 행적 논란은 백선엽 장군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 여부까지
옮겨붙여 요즘 논란이 됐습니다. 장지는 최종적으로
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습니다.
유족은 부인 노인숙씨와 아들 남혁·남흥씨, 딸 남희·남순씨가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장만됐습니다.
발인은 오는 15일 오전 7시입니다.
이렇다 보니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한 백선엽 장군은 2010년에는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명예원수(元帥·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가 불발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백선엽 장군은 지난해 6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내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한
1943년 초엔 항일 독립군도, 김일성 부대도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밀려 간도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버리고 없을 때였다고 합니다"면서 "독립군과
전투행위를 한 사실이 완전 없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자기자신의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근무 시절
조선인 항일 독립군과의 전투 등을 기술한 데 대해서는
"1930년대 간도특설대 초기의 피할 수 없었던 동족 간의
전투와 희생 사례에 대해 같은 조선인으로서의 가슴
아픈 소회를 밝혔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준비한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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